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|| [[파일:external/ona.c.blog.so-net.ne.jp/Stalin2C20Voroshilov.jpg|width=100%]] [[파일:attachment/Joseph_Stalin_and_Kliment_Voroshilov,_1935.jpg|width=100%]] || || 1935년, 두 명의 단란한 한때. || * 보로실로프와 스탈린은 정말 절친이었는지, 보로실로프가 스탈린과 함께 뱃놀이 갔을 때 스탈린이 농담삼아 "자네 [[영국]] [[스파이]]지?"라고 하자 보로실로프가 '''스탈린의 뺨을 때린 일이 있었다고 한다.''' * 이름 때문에 [[제1차 세계 대전]] 당시의 러시아군 장성이었던 [[알렉세이 브루실로프]]와 헷갈릴 수도 있다. * 1935~1958년, 1970년~1990년 사이에 [[우크라이나]] 동부에 있는 루간스크(루한시크)는 이 사람의 이름을 딴 '보로실로프그라드'로 불렸다. * 스탈린 시대의 숨막히던 사회 분위기를 잘 묘사한 [[영화]] [[이너 서클#s-1|이너 서클]]에서도 시대 변화를 보여 주는 장치로 등장한다. 주인공의 이웃 집에서는 보로실로프를 영웅이라고 추켜세우며 초상화까지 걸어둘 정도로 강한 빠심을 드러내는데, 대숙청 당시 보로실로프의 인기를 반영한 설정이다. 하지만 그 이웃도 결국 대숙청에 휘말려 어딘가로 끌려가고, 스탈린의 전속 영화 상영 기사가 된 주인공도 [[독소전쟁]] 초반 소련군이 신나게 깨지자 보로실로프가 스탈린 집무실에서 실컷 갈굼당하고 나오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크게 실망한다. 결국 주인공은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웃에게 물려받은 보로실로프 초상화를 스탈린 초상화로 바꿔 버린다. 이 과정에서 열려 있던 반지하방 창문으로 마침 지나가던 소떼들이 오줌을 갈기자 보로실로프 초상화로 오줌 세례를 막는 등 한 번 더 능욕당한다(...) * 중전차 [[보로실로프 전차]] 이름의 기원이 된 인물이기도 하다.[* 비슷하게 인물의 이니셜을 딴 소련 전차로는 [[IS-2|IS 시리즈]]가 있다. 이쪽은 [[스탈린]]의 이니셜.] 영어로는 '''K'''liment '''V'''oroshilov를 줄여 KV라고 하고 러시아어로는 '''К'''лимент '''В'''орошилов를 줄여 КВ라고 한다. [[보로실로프 전차]] 항목을 참조하면 알 수 있지만 보로실로프가 이 전차의 개발에 힘을 실어 준 것이 계기가 돼서 이 양반의 이름이 붙었다. 괜히 이 전차의 개발진들이 전차에다 이 사람의 이름을 붙인 게 아니다.[* [[조제프 코틴]]이 보로실로프의 사위라 후원을 받았다는 낭설이 있는데 아래 서술되어있다시피 보로실로프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었고 코틴도 그의 사위가 아니다.] 이 전차는 그때까지 개발된 그 어떤 전차보다도 덩치가 컸으며, 무식하게 두꺼운 장갑으로 [[T-34-76|T-34]]와 함께 [[독일 국방군]]을 [[충격과 공포]]로 몰아 넣었다. 당시 독일군의 [[PaK 36|상냥한 도어노커]] [[대전차포]]로는 떡장갑 투성이인 KV를 격파하기 어려웠고, [[88mm 대공포]]까지 동원해야 했다. 그러나 기계적으로, 특히 변속기에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, 대전 내내 쓰이던 T-34와는 달리 1943년 이후에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. * 그의 아내 예카테리나 보로실로바(Екатерина Ворошилова, 1892 ~ 1959)는 우크라이나계 유대인으로 역시 혁명가였다. 본명은 골다 고르브만(Го́лда Горбман)으로 17살에 아르한겔스크 유형 중 또 다른 혁명가인 아벨 예누키제[* 조지아계 고참 볼셰비키 중 하나로 스탈린과 친했으나 [[대숙청]]으로 사망.]와 연애를 하다가 임신했고 낙태 과정에서 불임이 되었다. 보로실로프와는 1909년부터 사귀었으며 결혼하기 위해 정교회로 개종하며 가족과 원래의 이름을 버렸다. 본인은 불임이었지만 아이들을 좋아해 고아들을 데려와 키웠다. 그 중 두 명은 [[미하일 프룬제]]의 아이였다. * [[테헤란 회담]]이 끝난 이후, 저녁 만찬이 열리기 전 각국 대표단들은 다시 회의실에 모였다. [[윈스턴 처칠]] [[영국 총리]]는 [[영국 국왕]] [[조지 6세]]가 [[스탈린그라드 전투]]에서 승리한 것에 대한 축하의 의미로 만든 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Sword_of_Stalingrad|스탈린그라드의 검]]을 스탈린에게 선물했다. 스탈린은 이 검을 받은 뒤 감사의 의미로 칼집에 키스를 하고는 칼을 루즈벨트에게 넘겼다. 루즈벨트는 칼을 높이 쳐들고는 "그들은 진실로 강철의 심장를 가졌습니다(Truely they had hearts of steel)."고 외쳤다.[* 강철(steel)이 스탈린(stalin)과 비슷한 점을 이용해 스탈린에게도 찬사를 보낸 것이다.] || [[파일:스탈린 칼 킁킁.jpg|width=100%]] || || 검에 키스하는 스탈린. 사진에서 오른쪽의 인물은 당시 소련 외무상 [[몰로토프]]다. || 루즈벨트는 검을 다시 처칠에게 주었고, 처칠은 검을 스탈린 옆에 있던 보로실로프에게 건넸는데, 보로실로프가 허둥대어 칼집을 거꾸로 드는 바람에 '''칼이 빠져 그대로 땅에 내동댕이쳤다.''' [Include(틀:navervid, vid=9BE58C7654CF25C7C647CCC6D4CBF0CA1DFB,outkey=V1245d2023fa578a7774c8880c6dfa2b1982a78936706cdad66c18880c6dfa2b1982a)] 스탈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. 보로실로프의 행동은 소련의 체면을 떨어뜨린 것은 물론이고, 미신을 잘 믿는 스탈린에게는 불길한 것이었다. 처칠의 통역관이었던 휴 룽기(Hugh Lunghi)는 스탈린이 주먹을 꽉 쥔 모습을 보았다고 회고했다. 보로실로프는 행사가 끝난 후 필사적으로 처칠에게 사과했다. 처칠이 괜찮다며 용서하자 보로실로프는 그제야 안심했다. 마침 처칠의 생일이었기 때문에, 보로실로프는 생일 축하 인사 또한 건넸다. 하지만 처칠은 보로실로프가 돌아간 뒤 주변 사람들에게 '''"그 늙은 멍청이는 그런 것 하나도 제대로 못해!(The old fool can't even get that right!)"'''라며 비웃었다고 한다. || [[파일:스탈린 보로실로프 칼.jpg|width=100%]] || || 스탈린그라드의 검. 현재는 스탈린그라드 박물관에 소장 중이다. || * 보로실로프가 입양한 옛동료 프룬제의 두 자녀중, 아들 티무르 프룬제(1923-1942)는 [[독소전쟁]] 공군 파일럿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했고, 딸 타티아나 프룬제 (1920-)는 [[유기화학]] 박사로 교수로 근무하다 은퇴했다. 2020년 100살 생일을 맞았다고 한다. * 흐루쇼프 집권기인 만년에 실권으로 배제되고, 아내와 사별하자 [[우울증]]이 심해졌다고 한다. 그리하여 그의 보좌관들은 그가 자살할까봐 그가 호신용으로 지니던 권총의 실탄을 모두 공포탄으로 바꿔놓았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